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책 속에서

가쿠타 미쓰요, 오카자키 다케시 - 아주 오래된 서점

이 책을 줄곧 찾아다녔지만 도서관에서는 내내 누군가가 빌려간 상태였고, 그 누군가가 미워지기 시작했던 차라 여기서 발견한 게 행운이었다. 누군가 씨, 이제 미워하지 않을 테니 느긋하게 읽으세요.

p. 56

테디룽 : 나 역시 한번 빌린 책을 읽을 때까지 계속 연장하고 반복해서 빌리는 타입이라 내심 찔렸습니다. 누군가가 예약하면 문자로 알려주는 시스템이라 마음놓고 그렇게 하는 것도 있지만, 누군가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할 가능성을 없애는 건 분명합니다. 정말 못 읽을 거 같은 책은 반납하고 새로 다른 책을 빌리곤 하는데 정말 읽을 책만 빌려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.


'말라르메'라는 이름이 내게 환기하는 것은 가장 심각한 수준의 무지를 견디던 그 무렵의 초조함이다. 헌책방의 책장 앞에서 열여덟 살의 나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. 세상에는 이렇게 책이 많다. 언제쯤이면 다 읽을 수 있을까. 그것은 두꺼운 지식의 벽이었다.

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, 파라핀지에 싸인 책 앞에 서니 이곳이 정말 좋은 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. 읽어야 할 책이 제대로 진열되어 있다. 특정한 시기에 턱없이 많이 팔리고 그 이후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베스트셀러나, 뇌와 감각을 쓰지 않고 눈만으로 읽을 수 있는 안이한 소설은 미련없이 들여놓지 않는다.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. 그럴 때는 이 가게에 오면 된다. 책장이 가만히 가르쳐준다. 책장 끝부터 한 권씩 읽어나가면 된다.

p.106-107

테디룽 : 무지와 초조함에 공감합니다. 여전히 나는 불안에 떤다.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들과 수많은 목소리에 둘러싸이는 경험을 할 때가 있는데 나는 얼른 도망을 나와 버립니다. 여전히 내가 방랑하는 이유는 그 목소리들과 맞서 싸울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.


그런 것이다. 니시오쿠보 헌책방의 책장에 꽂힌 책은 전부 한 번은 누군가에게 읽힌 뒤 그 누군가를 완성시키는 작은 세포가 되었고, 그런 다음 여기로 왔다는 느낌이 든다. 그래서 묘하게 안심이 된다. 신뢰할 수 있는 친구에게 책을 추천받은 안도감이다. 서점 사람들도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책을 다룰 것이다. 이번에 돌아본 세 서점 모두, 서점 안과 서점 주인 모두에게서 바람이 술술 통하는 듯한 묘한 여유가 느껴졌다. 이는 아마도 누군가가 소중히 여겨온 책을 다룬다는 안도감이 자아내는 공기일 것이다.

p. 181

테디룽 : 중고서점에 책을 팔아봤지만 아직은 소중히 여겨온 책을 팔아보지는 않았습니다. 그래서 헌책방에 있는 책들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작지만 큰 역할을 하고 온 책들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. 그래서 그런지 책을 열심히 읽는 도서관에서는 책의 낡아 떨어진 여부와 상관없이 훈훈함이 느껴지나 봅니다. 좋은 도서관은 새 책들로 가득한 도서관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읽고 책에 영향 받는 삶을 살도록 돕는 도서관이 아닐까 싶습니다.